08.06.25    Avyakt Bapdada     Korean Murli     15.11.2005    Om Shanti     Madhuban


진실된마음으로아버지와가족을사랑하고, 애씀에서자유로워지겠다고약속하고,
그약속에서유익을취해라.


오늘 밥다다는 모든 곳에서 그의 고귀한 자녀들, 자아주권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자아 존중의 단계에 안정해 있는 이들을 보고 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주어온 존중은 그 스스로에 대한 것보다 더 높다. 모든 자녀들을 발아래 무릎 꿇는 데서 해방시키고, 그는 그들을 그의 머리 위 왕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항시 스스로를 사랑스러운 자녀들의 하인이라고 칭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그렇게 대단한 권위에 해당되는 존중을 표해 왔다. 그러니 너희들 각자는 스스로가 그런 자아존중을 가졌다고 여기느냐? 자아 존중에 안정해 있는 사람의 특별한 특기사항이 무엇이냐? 어떤 이가 자아 존중을 가진 그 정도에 따라, 그는 또 그만큼 모든 이들을 존중할 것이다. 그 사람이 존중심을 가지는 정도만큼 그는 겸손하고 또한 모든 이들에게 사랑 받을 것이며, 모든 이들을 사랑할 것이다 (“세르바 까 삐아라”, 즉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뜻). 자아 존중을 가진 이들을 나타내는 징표는 그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한 모든 이들을 사랑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유한한 숫자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게 사랑할 것이다. 아버지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어떤 이가 한 달이 되었든 본래의 보석이든, 각자가 “나는 바바에게 속하고, 바바도 나에게 속한다”라고 믿는다. 이 고귀한 자아 존중이 바로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인데, 왜냐하면 그런 자녀들은 아버지를 따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보아라,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들, 어른인 자녀들까지 아버지는 모든 연령을 존중해 주었다. 그는 젊은이들을 존중하여 더 이상 파괴적인 자들이 아닌, 세계 시혜자로 보아왔다. 그는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가정을 갖고 가정에서 사는 이들에 대해서 그는 그들을 위대한 영혼들과 위대한 자가드구루(현자들)보다도 더 높게 만들어 주었다. 비록 그들이 가정에서 살지만, 그는 그들을 초월해 머문다는 태도를 가진 위대한 영혼들이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그런 이들로 만들었다. 그는 쿠마리들에게 쉬브 샥티의 형태에 대한 존중심을 상기시켰고,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더 오래되고 원숙하며 경험 많은 자녀들을 아버지 브라마와 똑같이 존중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본인의 자아 존중에 안정해 있는 자녀들은 그 존중심으로 모든 영혼을 볼 것이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그들과 관계를 맺거나 접촉할 것이다. 자아 존중(스와만)은 육체의식(데 아비만)을 끝낸다. 자아 존중이 있는 곳에는 육신의 교만이 없을 것이다. 육체의식을 끝내는 아주 쉬운 길은 너희가 변함없이 자아 존중에 머무는 것이다. 항상 존중심으로 서로를 보아라. 어떤 이가 보병에 속하든, 심지어는 드라마에 따라서 1만 6천 염주의 마지막 순서라 해도, 꼴찌 등수조차 아버지에게서 뭔가 한 가지 특기를 받았다. 자아 존중을 가진 이는 다른 이들의 특질을 보며 그들을 존중해줄 것이다. 각자의 특질이 그의 눈길, 태도, 행위들에 합쳐져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속하는 사람은 누구든 특별한 영혼이다. 비록 그가 등수대로라 해도, 세상의 영혼들에 비하면 그는 수백만 명 중에서 뽑힌 하나다. 너희 모두 이런 식으로 너희 스스로를 그런 특별한 영혼이라고 여기느냐? 너희는 각자 자아 존중에 안정해 머물러야 한다. 육체의식이 아닌, 자아 존중이다.

아버지는 왜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냐? 그것은 각 자녀가 그를 알아보았으며, 그에게 속한다는 것을 아버지가 알기 때문이다. 비록 이 집회에 처음 왔어도 그들이 “바바”라고 했으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밥다다는 모든 곳에서 온 자녀들 모두에 대해서 대단히 큰 사랑을 가진다. 똑같은 방식으로 아버지를 따라라. 사랑을 받지 않는 이는 단 하나도 없으며, 각자가 다 사랑을 받는다. 보아라, 누구든지 “나의 바바”라고 말하는 자녀에게 - “내 것”이라는 이 의식이 어디서 오는 것이냐? 그것은 사랑이다. 여기에 앉아 있는 너희 모두는, 너희가 아버지에게 속하게 만든 게 사랑이라고 느낀다. 아버지의 사랑은 자석이다. 사랑의 자석으로 너희는 아버지에게 속하게 되었다. 단지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사랑은 이 브라민 생의 기반이다. 너희들은 왜 바바를 만나려고 오느냐? 너희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 사랑이다, 그렇지 않으냐? 여기에 와서 여기에 앉아 있는 너희들 모두는 왜 온 것이냐? 너희들을 잡아당긴 것은 사랑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얼마만큼의 사랑을 가졌느냐? 100%냐 아니면 그보다 적으냐? 너희들 중 100%의 사랑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손을 들어라! 사랑만으로 100%냐? 아주 조금도 덜하지는 않겠지? 앗챠, 그러면 브라민 가족 안에서 너희들끼리도 꼭 그만큼의 사랑을 가졌느냐? 바바가 너희에게 이것에 대해 손을 들라고 해야 되겠느냐? 이것에는 퍼센티지가 있다. 아버지가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너희 자녀들 역시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다른 이들의 약점을 보지 말아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산스카라의 영향을 받는다면 너희가 따라야 할 이는 누구냐? 영향을 받은 이들이냐? 너희는 마음을 수련하는 만트라를 들려주는 이들, 그들을 어떤 영향에서 해방시키는 만트라를 들려주는 이들이다, 너희는 그들을 해방시켜주는 이들이다, 그렇지 않으냐? 아니면 너희는 다른 이들을 보는 이들이냐? 아니면 너희가 그들의 약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냐? 뭔가 나쁜 것을 보았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계속해서 그것을 보겠느냐 아니면 발걸음을 다른 데로 옮기겠느냐? 밥다다는 마음속에 사랑을 가진 이들,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가진 이들은 반드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리라는 것을 보아왔다. 마음속의 사랑은 완전해지고 완성되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만일 그들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면 브라민 생을 즐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메마르고 아무런 맛도 없는 삶일 것이다. 이 지식의 길에서 사랑 없이 지식만 있다면, 이 지식에서 “왜? 무엇이?”와 같은 의문들이 솟아날 것이다. 하지만 이 지식과 함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결같이 사랑에 잠겨있을 것이다. 사랑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어떤 이가 단지 지식만 많고 사랑이 없다면 그는 애써야 한다. 그 사람은 애씀의 열매를 먹고, 이 사람은 사랑의 열매를 먹는다. 이 지식은 씨앗이며, 사랑은 물이다. 씨앗이 사랑의 물을 받지 못한다면 열매가 나올 수 없다.

오늘 밥다다는 자녀들 모두의 마음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면 너희 모두 스스로를 뭐라고 여기느냐? 너희는 사랑을 하고 있느냐? 사랑하고 있느냐? 너희들 중에서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손을 들어라! 너희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있느냐?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있느냐? 앗챠. 너희들은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가졌는데, 다른 모든 이들도 사랑하고 있느냐? 모든 이들을? 너희 각자가 ”이 사람은 내 형제 또는 자매“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들 각자 ”이 사람은 나에게 속한다”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그렇게 믿느냐? 아니면 너희들 중 오직 몇 명만 그렇게 믿느냐? 너희 모두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면서 손을 든 것처럼, 그래, 너희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해서도 “네, 모든 이들을 사랑합니다”라고 손을 들겠느냐? 너희가 이 증서를 받겠느냐? 밥다다는 앞서도 너희에게 그저 아버지에게서만 증서를 받아서는 안 되고, 브라민 가족에게서도 증서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아버지는 지금 종교와 왕국을 동시에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왕국에는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니라 가족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가족도 사랑하여라.

너희는 지식이 많아졌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것도 역시 필수적이다. 자아 존중에 머물며 또한 존중해 주는 것, 둘 다 반드시 필요하다. 너희 자녀들 각자가 브라민으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너희를 존중해 주었고, 이렇게 해서 너희들이 그토록 고귀해졌다. 너희들은 이번 한 생에 존중을 해줘야 하고 그러면 그 보상으로 너희들은 전체 사이클 내내 존중받을 것이다. 반 사이클 동안 너희는 왕국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존중을 받고, 반 사이클 동안은 신봉의 길에서 너희가 신봉자들에게 존중을 받는다. 그러나 전체 사이클 동안 이것의 기반은 이번 한 생에 존중을 주고 존중을 받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밥다다는 해외 모든 곳의 자녀들을 보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밤에 이 만남을 축하하고 있고, 나머지들은 낮에 이 만남을 축하하고 있다. 너희의 봉사 속도를 늘리기 위해서 너희에게는 참으로 훌륭한 다디(다디 잔키)도 역시 있다. 그렇지 않으냐? 조금이라도 나약함을 볼 때면, 그녀는 그것에 대해 강의를 하고 계속해서 한다. 이 나라나 외국의 어떤 자녀들이 어느 과목에 애써야 할 때는 그 주된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에 잠겨있다는 뜻이다. 너희는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데, 너희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너희가 노력해야 한다면 그 해결 방식은 너희 마음속의 사랑을 체크하는 것이다. “어딘가 새는 데가 있는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이의 특기, 편의시설, 뭔가의 구제 또는 가외의 구제(시설/ 지원) 등에 대한 애착이 있을 경우, 충분한 구제는 괜찮지만 너희는 때때로 가외의 구제에 사랑이나 애착을 갖게 되고, 그러면 계속해서 그 구제가 기억날 것이다. 그것을 나타내는 징표는, 어딘가 누출이 있을 때는 무슨 이유로든 너희 삶에 한결같은 충족감에 대한 경험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럴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너희가 불만을 경험하게 되는 반면, 충족감이 있는 곳에서 그것을 나타내는 징표는 한결같이 행복이 있으리라는 점이다. 너희들은 끊임없이 영적인 장미처럼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활짝 핀 상태로 머물고, “기분이 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희는 한결같이 더블 라이트한 상태로 지낼 것이다. 이렇게 이해가 되느냐? 이제는 애씀으로부터 너희 스스로를 구해라. 너희 자녀들이 애써야 할 때, 밥다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희들은 반 사이클 동안 애를 써 왔으니, 이제는 스스로 즐겨라. 사랑에 잠겨 있어라. 지식의 대양 바닥에서 사랑의 진주를 경험하여라. 그저 한번 몸을 담그고는 바다에서 나오지 말고, 그 안에 잠긴 채로 머물러라.

너희들 모두 아버지와 함께 살고, 그와 함께 집에 돌아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희는 그런 약속을 했느냐? 그와 함께 갈 것이냐, 그를 따라갈 것이냐? 바바와 함께 돌아갈 준비가 된 이들은 손을 들어라! 너희들은 준비가 되어 있느냐? 신중히 고려해 본 다음에 손을 들어라. 준비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와 대등하다는 뜻이다. 누가 그와 함께 가겠느냐? 대등한 이들은 그와 함께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그와 같이 갈 것이냐? 항시 준비되어 있느냐? 첫 줄은 항시 준비되어 있느냐? 항시 준비되어 있느냐? 그와 함께 내일 가라는 지시를 받는다면, 그와 함께 갈 것이냐? 가정에 살고 있는 이들아, 너희는 그와 함께 갈 것이냐? 너희는 자식들을 기억한다, 그렇지 않겠느냐? 너희 어머니들은 바바와 함께 갈 것이냐? 너희 어머니들은 준비되어 있느냐? 너희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느냐? 너희 선생들은 너희의 센터와 너희의 학생들을 기억하겠느냐? 너희는 그들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냐? 앗챠. 너희 모두 애착에서 자유로워졌느냐? 그것은 아주 좋다. 그렇다면 너희는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오늘 밥다다는 너희가 아버지 앞에 앉아 있든, 먼 데 앉아 있으면서 아버지 마음속에 앉아 있든, 모든 이들을 애쓰는 데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만들고자 한다. 너희는 그렇게 될 것이냐? 너희가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렇게 되겠느냐? 내일부터는 아무도 다디들에게 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다디들이 너희 때문에 노력하게 만들지는 않겠지? 너희는 즐거움을 위해 다디들을 만날 것이다. 너희는 각 지구의 책임자들에게 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완성될 것이다. 그것이 괜찮으냐? 이제 손을 들어라!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서 손을 들어라. 그냥 그렇게 손을 들지는 말아라. 불평은 하나도 없다. 어느 누구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없고 아무도 너희에게 속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미 끝났다. 보아라, 너희들은 약속했고 그것은 좋다. 축하한다! 그러나 다만 너희들은 그 약속에서 유익을 받지 못한다. 너희들이 약속은 아주 금방 하지만, 그 약속에서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우선 매일 그것에 대해 자각하고, 둘째로는 그것을 복습하여라. “내가 무엇을 약속했지?”라고 하며, 너희의 약속을 매일 검토하여라, 암릿 벨라의 만남 후에는 약속(바이다)과 그 유익(화이다)의 균형을 차트로 기록하여라. 너희는 무엇을 약속했느냐? 너희는 무슨 유익을 얻고 있느냐? 그것을 인지하고 수정하여라. 균형이 있을 때는 괜찮을 것이다. 밥다다는 미팅을 하고 있는 이들이 그런 약속을 했다는 것을 안다.

밥다다는 너희들이 밥다다가 좋아하는 아주 좋은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아왔다. 밥다다가 무엇을 원하겠느냐? 밥다다는 그저 “모든 것을 가치 있는 방식으로 사용하여라”라는 표현 하나만 원한다, 성공하여라. 너희들이 가진 모든 보물들, 너희가 가진 힘들, 즉 생각, 말, 행동 역시 그런 힘들이다. 시간은 보물이고 또한 힘이기도 하니, 너희는 그 모든 것을 가치 있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 물리적인 부든 영적인 보물이든, 너희는 모든 것을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한다. 너희는 성공의 화신이라는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치 있게 쓰고, 다른 이들도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가치 있게 쓸 수 있게 해주어라. 만일 어떤 이가 뭔가를 가치 있게 쓰고 있지 않다면, 그럴 때는 무슨 말을 하거나 바로잡아 주지말고, 그저 좋은 염원과 순수한 느낌으로, 그리고 변함없이 순수한 존중심을 가져줌으로써, 그들이 모든 것을 가치 있게 쓸 수 있게 해주어라. 그저 고쳐주기만 하지는 말아라. 너희가 그들을 고쳐줘야만 한다면, 그런 경우에는 용서를 하고, 그와 더불어 고쳐주어라. 너희의 용서하는 모습을 통해서 가르침을 주어라. 자비로워져라. 자비로워져라. 너희의 자비로운 형태는 반드시 고쳐지는 결실을 보여줄 것이다. 보아라, 심지어 오늘날에도 외과의사들이 수술을 할 때, 제일 먼저 무엇을 하느냐? 그들은 먼저 너희를 잠들게(마취)한 다음에 수술을 행한다. 그렇게 하기 전에는 수술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옥도정기(팅크제, tincture)를 바른다. 먼저 후 하고 입김을 분 다음에 요드 팅크를 바른다. 그처럼 너희들도 제일 먼저 자비로워져야 하고, 그런 다음에 바로잡아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것이 그들에게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바로잡아주기 시작할 때, 그들은 이미 너희보다 더 영리하다. 그래서 선생은 다른 선생이 뭔가 고쳐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그들에게 어떤 것에 대해 “그렇게 하지말고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하면, 그들에게는 너희를 차단할 10가지 점들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와 교정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번 70주년의 주제는 모든 것을 가치 있게 쓰고, 다른 이들이 모든 것을 가치 있게 쓸 수 있게 해주고, 성공의 화신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가치 있는 방식으로 써라. 너희들은 더블 라이트가 되기를 원하고, 그러므로 모든 것을 가치 있게 사용하여라. 심지어 너희의 산스카라조차 가치 있는 방식으로 써라. 너희의 본래 산스카라, 너희들의 신인 산스카라, 영혼의 영원한 산스카라가 나오게 하여라. 잘못된 산스카라는 화장시켜 버려라. 너희들의 본래의 영원한 산스카라가 나올 수 있게 하여라. 지금 모든 이들이 특히 이것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 “나는 내 산스카라를 바꿀 수가 없다. 나는 산스카라를 변화시킬 수가 없다.”

너희 모두가 애쓰는 데서 벗어나 자유롭게 지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 않았느냐? (모든 이들이 손을 들었다.) 사진을 찍어라. 그러니 이제 1분 동안 너희의 마음 속에 결단력을 갖고 이 약속에 밑줄을 그어라. 너희들의 마음속에서 그것을 확고히 하여라. (반복 훈련) 앗챠.

자아존중을 가진 모든 곳의 너희 자녀들 모두에게, 항시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가진 이들에게,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고귀한 영혼들에게, 애쓰는 데서 변함없이 자유롭게 머물며 해방된 삶을 경험하는, 집중적으로 노력하는 자녀들에게, 그들이 한 약속과 그 약속에서 오는 유익의 균형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희열이 가득한 자녀들에게, 변함없이 즐거움 속에 머물며 다른 이들도 즐거움 속에 머물 수 있게 해주는 이들에게, 고귀한 행운에 대한 권리를 가진 합류시대의 그런 자녀들에게, 밥다다의 사랑과 기억을, 또한 마음의 위로자가 마음으로부터의 축복을. 사랑과 기억과 나마스테.

다디들에게: 너희들은 괜찮으냐? 너희를 보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다. 아버지와 자녀들, 이렇게 모든 이들이 너희를 둘 다 보면서 행복하다. 너희들 두 명은 대등하다. 너희들은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모든 이들이 다디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가진다. 모든 이들이 넘치도록 많이 사랑한다. 도구가 되는 이들에게도 역시 책임이 있고, 그래서 그들은 또한 꼭 그만큼 사랑을 받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삶 속에서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과 축복의 승강기를 받기 때문이다. 도구가 되는 너희들 역시 승강기를 받는다. 그러나 너희가 항상 승강기라는 선물을 가지고 다니면 많은 혜택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너희가 받는 가외의 축복이다. 신의 과업이든 야기야에 대한 봉사든, 어떠한 과업이라도 그것의 특별한 도구가 되는 이들은 축복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승강기를 모두 받는다. 사랑은 기적을 행할 정도인 그런 것이다. 오늘 만일 너희가 세상의 누구에게든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저는 사랑을 원해요. 저는 평화를 원합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오직 사랑으로만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사랑, 영혼의식의 사랑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하다.

축복:
결합된 너희의 형태를 의식하고, 아버지를 잊고 실수하는 데서 벗어나 자유로워짐으로써 한결같은 요기가 되어라.

아버지와 자신이 결합되어 있음을 경험하는 자녀들은 자동적으로 “한결같은 요기가 되어라!”라는 축복을 받는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 계속해서 만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들이 그를 잊게 만들려고 아무리 애쓴다 해도, 그들은 결코 그를 잊지 않는다. 절대로 아버지를 잊지 않는 그런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지극히 사랑받는 한결같은 요기들인데, 왜냐하면 사랑을 나타내는 징표가 자연스러운 기억이기 때문이다. 마야는 그들의 생각을 손톱만큼도(아주 조금도) 흔들 수 없다.

슬로건:
변명하지 말고 그 대신 해결책을 찾아라, 그러면 너희는 축복 받을 권리를 차지할 것이다.

아비약트신호: 영혼의식단계에서내향적으로머무는수련을쌓아라.

내향적이 되어 이 지식을 되새기는 훈련으로 변함없이 알로킥한 도취감에 도취된 채 머물러라. 그러면 이 세상의 그 어떤 문제도 너희를 끌어당길 수 없을 것이다. 군인들이 폭탄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지하로 들어가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너희도 내향적이 되어서 영혼의식 단계라는 지하로 들어가는 수련을 쌓을 때, 외부적인 사물들이 너희의 정신을 어지럽히지 못할 것이다.